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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에서 추장이 된 구승회, 이은미 부부기대봉사단의 사역지, 해외봉사 활동소개

2018.03.12



안녕하세요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하게 만드는 국제구호단체(NGO) 기아대책 입니다. 옆집 마실 가듯 홀연히 떠났던 아프리카에서의 선교를 시작으로 극심한 말라리아에 시달리고, 양파로 연명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던 선교사가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평범한 삶을 살아 보려고 몸부림쳤지만, 결국 아내와 함께 기대봉사단의 길을 걷게 된 구승회 기대봉사단. 그가 해외봉사를 위해 떠난 곳은 아프리카 가나 볼가탕가입니다. 절대 빈곤 지역으로 분류되며 사람과 가축이 함께 거주하기 때문에 각종 질병과 말라리아에 무방비로 노출 되어있는 이곳에서 부부 기대봉사단을 통해 일어난 볼가탕가의 성장이야기를 지금부터 전해드립니다.



나, 아프리카 갔다 올게요.


젊은 시절, 예수님께 사랑을 보이는 데에 관심이 많았던 구승회 기대봉사단. 열정만 가득했던 그의 꿈에는 어떠한 구체적 준비도, 계획도 없었습니다. 1991 29살이 되던 해, 가나로 와서 일을 도와달라는 지인의 해외봉사활동 부탁을 받고 '나 아프리카 다녀올게요.' 한마디만 던진 후 임신한 아내를 두고 비행기에 오른 그였습니다. 1년 후, 풍채 좋던 청년은 갖은 고생과 풍토병에 시달리며 가족들조차 한 눈에 못 알아볼 정도로 홀쭉해 진 채 김포공항에 도착했는데요. 아내 이은미 기대봉사단은 남편의 벅찬 열정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저 눈물만 조용히 훔쳤다고 합니다. 그 뒤 10년 동안 구승회 기대봉사단은 전도사로 있던 교회도, 사역을 진행한 교회도 모두 떠나 오로지 가정을 위해 생업에만 종사했습니다. 남편도 없이 첫 출산을 하게 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선교지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던 기억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삶'을 원했던 부부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삶을 기대하며 양평으로 내려갔지만 우유배달, 판촉 등 가리지 않고 뛰어든 일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잇따른 사고로 건강까지 안 좋아지자 구승회 기대봉사단원은 하나님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다시 한번 사명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아이 둘, 아내와 함께 해외봉사를 위해 아프리카 가나로 향했습니다.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한 '응답'


구승회 기대봉사단의 가족은 가나의 최북단에 위치한 볼가탕가로 향했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예감하고 찾은 이곳에서 이들은 하루하루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며 7년이라는 시간을 해외봉사로 쌓아 나갔습니다. 볼가탕가에 오기 전까지 선교에 큰 뜻이 없던 아내 이은미 기대봉사단은 어느덧 해외봉사를 통해 현지 아이들을 자식같이 귀하게 돌보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는 남편처럼 살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선교사의 배우자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남편을 만나고 역경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명확한 ‘응답’은 이은미 기대봉사단이 사역자의 삶에 순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진. 가나 볼가탕가에서 사역중인 구승회, 이은미 부부 기대봉사단


7년여 간 볼가탕가에서 사역한 부부 기대봉사단은 이 지역에 더 체계적인 사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속적인 해외봉사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이들은 한국에 돌아와 기아대책 훈련을 받으며 기대봉사단으로서의 사역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에 평생을 바치기 위해서는 부부에게 큰 결심이 필요했는데요. 아이들의 교육과 성장을 위해서 자식과의 작별이라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입니다. 부부 기대봉사단의 아이들은 의젓하게도 가나에서 함께 지내보았기 때문에 이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했고, 선교사로서의 부모님을 응원하며 해외봉사를 떠나는 부부의 걸음에 무게를 덜어주었습니다.



믿음으로 정착한 방공호, 볼가탕가

볼가탕가 교회에서 첫 사역을 시작했을 때 모여든 180여 명의 아이들에겐 언제나 파리가 들끓었습니다. 서류 작성을 위해 아이들에게 이름과 나이를 물어도 대답하지 못했고, 보호자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볼가탕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토록 척박한 환경에 터를 잡은 구승회·이은미 기대봉사단은 아이들의 변화를 위해 부모와 마을 공동체의 성장을 목표로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물건을 팔듯 아이들을 조혼 시키고, 방임된 아이들이 넘쳐나는 볼가탕가에서 가정과 공동체를 세우는 건 그 첫 번째 임무였습니다.



▲사진. 볼가탕가 아동결연센터에서 교육, 급식 지원을 받는 아동들


현지 교회로 쓰이던 좁은 공간에 아이들을 불러 모아 당장 한 끼가 급했던 아이들을 먹이고 교육하자, 부모들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적대적이던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공동체 역시 두 기대봉사단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었습니다. 지역 아이들의 삶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볼가탕가 지도자는 지역사회의 토지를 기꺼이 내주면서 볼가탕가의 미래를 변화시켜 줄 것을 부부 기대봉사단에게 당부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난한 이방인에서 공동체를 이끄는 추장으로


제가 생각하는 기아대책의 VOC(공동체의 비전·Vision of Community)는 ‘아이들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기아대책의 아동개발 사업은 아이들의 영적 영역과 육체적 영역이 함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해요. 이런 양육을 통해 성장한 아이들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 세 대가 바뀌고 더 나아가 나라가 바뀔 거라 생각해요. 이 지역은 아직은 가난하지만, 저는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9년을 볼가탕가에서 지낸 부부 기대봉사단은 이제 볼가탕가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믿음직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가나 정부에서도 무시하지 못하는 ‘추장’ 계급까지 부여 받은 구승회 기대봉사단은 주민들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사진. 지역 추장으로 임명된 구승회 기대봉사단(위), 지역 조사에 참여중인 구승회 기대봉사단(아래)


모슬렘이 반기를 들고 기대봉사단의 활동을 저지해도 지역 주민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며 지원군이 되어주니 부부 기대봉사단은 탄탄한 방공호에 있는 듯 합니다. 지역사회의 전통적 권위를 가진 추장 구승회 기대봉사단은 지역 리더들과 지역 대소사에 관한 결정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지역 아동들을 위해 세운 사립학교는 가나 교육 관계자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둘러보고 갈 정도라고 합니다.



부부 기대봉사단은 2017년 1월, 볼가탕가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다뮤 마을에 다뮤아동개발센터를 새로 열어 아동개발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잠시 돌아온 한국에서 교육용 완구를 보자마자 볼가탕가에서 활용할 창의력 개발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구승회·이은미 기대봉사단. 이들의 진심 어린 걸음으로 어느 덧 볼가탕가에는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부모에게 종속돼 있지 않다고 깨닫고 정략결혼을 거부하는 아이. 여기서 배우고 싶다고 명확히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 자신이 소중하고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부부의 끝없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훗날 볼가탕가에 돋아날 새로운 날개를 기대하며, 사뿐히 날아 오를 지역의 미래를 조심스레 그려봅니다. 기대봉사단 후원으로 볼가탕가의 날개에 힘을 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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